의지력이 바닥났다는 그 실험은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녁에 참지 못한 것이 의지력이 바닥나서라는 설명은 근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이렇습니다. 그 효과가 없다고 증명된 것이 아니라, 처음 주장했던 크기의 근거가 사라졌습니다.
이 글에서 다룰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그 실험이 무엇이었고 숫자가 어떻게 줄어들었는지, 2) 그럼에도 남아 있는 반론은 무엇인지.
이 글은 제가 겪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앞선 글들은 제가 직접 막히고 직접 잰 것을 썼습니다. 이 글은 다릅니다. 저는 심리학 실험을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한 것은 알려진 이야기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확인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 나오는 숫자는 전부 남의 것이고, 제 몫은 그 숫자들을 순서대로 늘어놓는 데까지입니다.
시작은 초콜릿이었습니다
1998년 실험입니다. 참가자에게 초콜릿을 눈앞에 두고 참게 했습니다. 그다음 다른 과제를 줬더니, 초콜릿을 참았던 쪽이 더 빨리 포기했습니다.
해석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참는 데 뭔가를 썼고, 그래서 다음에 쓸 것이 모자랐다. 의지력을 배터리처럼 보는 그림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그림은 강력했습니다. 설명력이 좋고, 무엇보다 자기 경험과 맞아떨어집니다. 하루 종일 참다가 저녁에 무너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감각이니까요.
2010년, 숫자가 붙었습니다
메타분석이 나왔습니다. 관련 실험 198건을 모아 효과크기를 계산했더니 0.62가 나왔습니다.
심리학에서 0.62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중간에서 큰 쪽에 가깝습니다. 이 시점에 자아고갈은 “숫자까지 붙은 정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모였는지를 물어야 했습니다
메타분석은 실험들을 모읍니다. 그러면 어떤 실험들이 모였는가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여기에 오래된 문제가 있습니다. 효과가 나온 연구는 논문이 되고, 효과가 없었던 연구는 서랍에 남습니다. 그러면 모을 수 있는 것은 처음부터 효과가 나온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출판편향입니다.
출판편향을 걷어내는 보정을 넣자 효과는 0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다시 해보기로 했습니다
보정은 통계적 추정입니다. 그러니 답은 하나뿐입니다. 다시 해보는 것.
여러 연구실이 같은 절차로 동시에 실험했습니다. 한 번은 23개 연구실, 다른 한 번은 36개 연구실이었습니다.
2010 메타분석 d = 0.62
다중 연구실 재현 d = 0.04
다중 연구실 재현 d = 0.06
0.04와 0.06은 “작다"가 아닙니다. 이 크기는 없는 것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두 재현 모두 오차 범위가 0을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말하는 것입니다
반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반론은 반대편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분석을 한 저자들 자신이 남긴 것입니다.
0을 지나지 않은 분석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묶느냐에 따라 효과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보정 방법이 새롭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출판편향을 걷어내는 방법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것이라, 그 방법이 과하게 깎아낼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자아고갈은 없다"고 쓰는 것은 지금 자료가 허락하는 것보다 한 발 더 나간 말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 0.62라는 크기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나
저녁에 무너지는 경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여전히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경험을 무엇으로 설명하느냐입니다.
배터리 그림은 하나의 처방을 낳습니다. 아꼈다가 중요한 데 쓰라는 것. 이 처방은 원 실험의 크기를 전제로 합니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처방도 같이 흔들립니다.
무엇이 대신 들어가야 하는지는 이 글이 답할 수 있는 범위 밖입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궁금하다면
들어본 심리학 개념을 만나면 순서를 이렇게 두십시오. 원 실험이 무엇이었나, 메타분석이 있나, 출판편향 보정 후에도 남나, 그리고 여러 연구실이 다시 해봤나.
마지막 두 개를 통과한 것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유명하다는 것과 재현됐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